
얼마 전 누구나 들으면 알 만한 스타트업의 엑싯을 경험한 대표를 만났습니다.
반려동물 관련 사업을 하시는 분인데, 사업 수완도 좋고 매너도 훌륭한 분이었죠.
그런데 IR 컨설팅 요청을 받고 자료를 받아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글자로 빽빽하게 채워진 보고서 형태였거든요.
이미 한 번 성공을 경험한 연쇄창업가도 투자제안서를 만드는 건 여전히 어렵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먼저 기존 발표 스타일을 확인했습니다.
발표는 정말 잘하시더군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슬라이드와 발표 내용이 매칭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는 분명히 알고 계신데, 발표 멘트와 슬라이드의 내용이 다른 겁니다.
발표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로는 듣고 있지만, 눈으로는 슬라이드의 다른 정보를 읽고 있는 상황이죠.
그래서 나는 제안했다, 원슬라이드 원메시지
저는 이 대표님께 슬라이드별로 리드메시지를 다시 정리하도록 도왔습니다.
보다 짧게, 하나의 메시지로 정리하는 작업이었죠.
데이터가 많아 복잡하고 다양한 정보가 들어있는 슬라이드일수록 이게 중요합니다.
그 슬라이드를 띄워놓고 발표자가 이야기하는 메시지가 분명해야 하거든요.
원슬라이드 원메시지(One Slide One Message)
그것도 문장으로 쓴 리드메시지를 제일 잘 보이게 작성하라고 제안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스타일에는 이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제안서든 입찰제안서든, 절대 스킵할 페이지나 설명하지도 않을 내용을 슬라이드에 가득 넣지 마세요.
스티브 잡스 방식은 한국 입찰시장 제안서에 맞지않다

많은 분들이 스티브 잡스의 발표를 롤모델로 삼습니다.
간결한 슬라이드, 여백의 미, 그리고 발표자의 설명으로 채워지는 내용.
하지만 스티브 잡스처럼 “이 페이지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를 뒤에 설명하는 방식은 우리나라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하는 것은 스티브 잡스가 하는 ‘쇼’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를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스티브 잡스 급의 브랜딩 파워를 가지고 있는 대표가, 소비자들이 열광할 제품을 공개할 때뿐입니다.
그건 제품 발표회입니다.
관객들은 이미 그 브랜드의 팬이고, 무엇이 나올지 기대하며 자리에 앉아 있죠.
하지만 우리가 하는 건 다릅니다.
경쟁에서 우리의 우위를 보여야 하는 제안서 발표입니다.
심사위원이나 투자자들을 설득해야 하는 IR입니다.
그들은 우리 팬이 아닙니다.
우리 제품에 열광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의심하고, 비교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슬라이드를 보는 순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바로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리드메시지가 명확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리드메시지 잘 쓰는 실전 팁



리드메시지를 잘 작성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여러분이 작성한 제안서 파워포인트에서 ‘여러 화면 보기’를 해보세요.
그 상태에서 리드메시지만 이어서 읽어보는 겁니다.
리드메시지만으로 전체 발표의 논리 흐름을 알 수 있으면 성공입니다.
리드메시지는 길면 안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사형으로 끝내지 않아도 되고 일부 조사는 생략해도 됩니다.
한국 사람들은 다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만약 상단 리드메시지만으로는 슬라이드에서 전하는 핵심을 전달하기 어렵다면 어떻게 할까요?
하단에 결론 메시지를 만들어 넣어도 됩니다.
흔히 말하는 “So what!” 메시지죠.
이제 버려야 할 것들
회사 개요, 특장점, 사업 추진 배경 같은 페이지 제목을 리드메시지 자리에 쓰지 마세요.
그런 건 빼거나 넣는다 하더라도 눈에 띄지 않게 작게 표시하세요.
왜일까요?
평가자들은 그런 목차를 스토리로 기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업체가 제안하는 내용이 우리가 원하는 바를 달성해줄 수 있나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겁니다.
제안 목차에 기준한 발표는 오히려 스토리를 난해하게 만들기만 합니다.
제안 목차는 일종의 이정표일 뿐입니다.
우리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도 않고, 스토리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리드메시지를 가장 잘 보이게 써야 하는 겁니다.
결국 제안서는 메시지 싸움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엑싯을 경험한 연쇄창업가도 제안서 만들기에서 막히는 이유는 뭘까요?
머릿속에 있는 완벽한 그림을 슬라이드로 옮기는 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발표는 잘하는데 슬라이드가 따로 노는 문제.
정보는 많은데 핵심 메시지가 안 보이는 문제.
스티브 잡스처럼 멋있게 만들었는데 평가자들이 이해 못 하는 문제.
이 모든 문제의 답은 하나입니다.
원슬라이드 원메시지.
슬라이드를 보는 순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바로 알 수 있게 만드세요.
리드메시지를 짧은 문장으로 쓰고, 제일 잘 보이게 배치하세요.
여러 화면 보기에서 리드메시지만 이어 읽었을 때 전체 논리 흐름이 보이게 만드세요.
투자제안서든 입찰제안서든 원리는 같습니다.
좋은 제안서는 복잡한 정보를 단순하고 명확한 메시지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결국 제안서는 메시지 싸움입니다.
오늘부터 당신의 제안서에 원슬라이드 원메시지 원칙을 적용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