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Home » IR자료 제작을 맡기기 전, 창업자가 먼저 답해야 할 질문

IR자료 제작을 맡기기 전, 창업자가 먼저 답해야 할 질문

IR을 거듭할수록 투자와 멀어지는 스타트업

IR 경험이 한두 번 쌓이면 창업자에게 묘한 자신감이 생긴다.
슬라이드 구성에 익숙해지고, 데이터 정리도 능숙해진다.
발표 흐름도 자연스러워지고, 질문 대응도 매끄러워진다.

그런데 이 시점에 가장 중요한 것을 건드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바로 문제 정의 슬라이드다.

IR자료를 다듬을수록 문제 슬라이드는 더 정교해진다.
시장 현황을 보여주는 리포트가 추가되고, 문제의 심각성을 뒷받침하는 수치도 보강된다.
완성도가 올라갈수록 발표장 분위기도 달라진다.
투자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가끔은 “이 문제 정말 중요하죠”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데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다.

공감과 투자는 전혀 다른 행위다

고개 끄덕임을 긍정 신호로 읽는 창업자가 많다.
그게 함정이다.

공감은 그 문제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다는 평가다.
투자는 그 문제를 가진 고객이 실제로 돈을 낼 것이라는 판단이다.
겹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동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 위기를 해결하겠다는 스타트업 서비스에 구독료를 기꺼이 내는 고객은 훨씬 적다.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아는 소비자는 넘쳐난다.
그러나 그 문제 때문에 소비 습관을 바꾸고 더 비싼 선택을 하는 고객은 얼마나 되는가?

IR자료를 보는 투자자가 실제로 확인하고 싶은 건 이 지점이다.
이 문제가 중요한가가 아니다.
고객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 이미 어떤 방식으로든 돈을 쓰고 있는가.
혹은 쓸 만큼 충분히 불편하고 불합리하다고 느끼는가.

이 오류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소셜벤처 IR

사회적 가치를 앞세운 스타트업일수록 이 함정에 깊이 빠진다.
해결하려는 문제는 분명 존재하고, 그 의미도 뚜렷하다.
발표 현장에서 공감을 끌어내는 데도 탁월하다.

문제는 그 공감이 결제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다.
해당 문제를 가진 사람이 직접 돈을 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부 지원, 기부금, 재단 그랜트가 수익 구조의 핵심을 차지한다.

투자자는 그 구조 안에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다.
고객의 자발적 지출이 수익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면, 투자금이 어디서 회수될지 계산이 서지 않는다.
IR자료가 아무리 정교해도 이 구조적 공백을 채울 수는 없다.

고객의 돈이 이미 흐르는 문제를 찾아라

고객이 지갑을 여는 문제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객이 이미 어떤 방식으로든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완벽한 솔루션이 없더라도 불완전한 대안에 시간과 돈이 들어가고 있다.
그 불완전한 지출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시장이 열려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바로 그것이다.

아무도 지금 돈을 쓰지 않는 문제라면 두 가지 가능성 중 하나다.
사람들이 그 문제를 실제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거나, 해결 의지는 있지만 지불 의향이 약한 경우다.
어느 쪽이든 투자자가 베팅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IR자료를 준비하는 창업자라면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먼저 던져봐야 한다.

내 타깃 고객이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에 돈을 쓰고 있는가?
그 지출이 불완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솔루션은 그 불완전함을 어떻게 채우는가?

이 세 가지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다면, 그 문제 정의는 투자자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공감받는 문제가 돈이 되는 문제는 아니다

IR 현장에서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이는 문제 정의가 사실 가장 위험한 경우가 많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거대한 사회 문제, 트렌드 리포트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키워드, 시대의 흐름처럼 읽히는 현상들.
이런 문제 정의는 발표장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효과적이다.
하지만 고객의 지갑을 여는 힘은 없다.

공감을 끌어내는 문제와 결제를 끌어내는 문제는 출발점이 다르다.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시장에서 살아남은 비즈니스를 들여다보면 패턴이 하나 보인다.
고객이 이미 불편하다고 느끼며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하려 했던 문제를 잡아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설득력 있는 의미를 얹었다.

순서가 있다.
고객이 돈을 내는 이유를 먼저 설계하고, 그 위에 사회적 가치를 올려야 한다.
반대로 하면 박수는 받지만 투자는 받지 못한다.

IR자료에서 문제 슬라이드의 진짜 목적은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가 아니다.
“고객이 이 문제 때문에 이미 비용을 치르고 있고, 우리는 그 비용을 더 가치 있는 방향으로 전환시켜줍니다”를 보여주는 것이다.

IR 전략을 다시 설계해야 할 타이밍

슬라이드를 다듬기 전에 이 질문 하나를 스스로에게 먼저 던져보자.

우리가 해결하려는 문제, 고객이 지금 그걸 해결하기 위해 돈을 쓰고 있는가?

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다면 IR자료를 보완하기 전에 문제 정의부터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완성도 높은 피치덱보다 날카로운 문제 정의가 먼저다.
투자자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에 베팅하는 사람이 아니다.
고객이 돈을 낼 만큼 불편하고 불합리한 문제를 찾아낸 창업자에게 베팅하는 사람이다.